🌈 초록취향 vol.20
- 사랑의 얼굴들
- 초록생활자 : 동물에게 빛을! 폴리도르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고기란
- 일상의 빛
- ㅊㄹㅊㅎ ac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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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누가 깨우지도 않아도 홀로 일어나 집을 나섭니다. 토요일 밤의 잔해와 플라타너스 낙엽이 뒤엉켜 구르는 대학로 마로니에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 끝에 혜화동 성당이 나타납니다. 성당 앞에는 늘 허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 옷주머니에서 몰래 꺼내 온 500원 짜리 동전을 아저씨의 모자 속에 넣습니다. 경사진 언덕 위,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크고 웅장한 성당에 들어서면 캄캄한 어둠은 이내 익숙해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쏟아져 내리는 색색의 빛이 벽과 제단, 바닥을 물들입니다. 길다란 의자에 앉아 하얀 레이스 미사보를 머리에 쓰고 두꺼운 성가책을 펼칩니다. 파이프오르간 연주에 맞춰 발음하기도 어려운 성가를 따라 부릅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를 합니다.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신이 아니라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성당 건축물의 아름다움, 미사라는 오래되고도 엄격한 형식의 아름다움, 파이프오르간 연주의 아름다움, 함께 부르는 성가의 아름다움, 꽃무늬 레이스 미사보의 아름다움. 어둠 속에서 더 환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문맹자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하고 신의 형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고 하죠. 성당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신의 신비이자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성당에 앉아 있었던 유년의 일요일들은 충만한 아름다움 속에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한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며 몸과 마음에 새겨나간 시간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떠나간 사람들과 떠나보낸 사람들, 그들의 외침들이 내 안에서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었고, 나는 나를 위로해야 했습니다.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 안에 환한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연의 품에서 위로 받는 시간, 공감과 연대로 회복하는 힘, 사랑하는 얼굴들. 이 모든 아름다움이 희망을 노래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진실한 마음에 다가가고 행동하고자 하는 열망과 성찰 속에서 우리는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더 환히 빛나는 빛. 끝내 꺼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빛이 오늘도 우리를 비춰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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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생활자 - 동물에게 빛을! 폴리도르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고기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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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폴리도르로 활동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고기란입니다.
Q. '폴리도르'라는 예쁜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보셨나요? 주인공이 마차를 타고 떠나 꿈에 그리던 대상, 헤밍웨이를 만나는 장면이 나와요.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와중에 만남의 장소가 사라져버리는데 그곳의 이름이 폴리도르(Polidor)였어요. 1845년에 문을 연 레스토랑인데 지금까지도 운영 중이고, 실제로 헤밍웨이의 단골집이었다고 해요. 간절히 그리고 바라던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곳, 그 아름다운 이름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며 상호로 사용하게 됐어요.
Q. 동물과 자연을 모티브로 빈티지 감성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만들고 계시죠.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A. 제 고향은 울산이고요. 오랫동안 서울에서 살다 제주에 내려오게 되면서 평소 관심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워 왔어요. 이전부터 꾸준히 그림이나 조각, 패브릭 같은 손으로 하는 작업들을 취미로 해오긴 했었는데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스테인드글라스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엄마가 손재주가 엄청 좋으셔서 제 옷도 만들어주시고 했는데 그 손재주를 이어받았는지 다행히 작업이 잘 맞았어요. 국내에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도 많고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동물을 작업하는 분들은 없더라고요. 동물에 예쁘게 담는 것에서 나아가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자료,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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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건축물 뿐 아니라 공예품, 예술작품에까지 스테인드글라스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죠? 스테인드글라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스테인드글라스는 대부분의 공예품, 특히 인테리어 소품에 활용되고 있어요. 빛을 불러 모아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 선캐처처럼 작은 소품, 조명, 트레이, 촛대, 화병, 화분, 정리함, 작은 테이블 등 무궁무진하죠. 저는 주로 동물과 자연을 담은 액자와 조명을 만들고 있어요.
색과 질감의 조합으로 구현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빛으로 완성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유리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아요. 색이 입혀진 색유리뿐 아니라 투명한 유리에 색을 입혀 자신만의 유리를 구워낼 수도 있지요. 같은 도안의 작업물도 유리의 색과 질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거든요. 빛이 통과하며 색이 표현되기 때문에 보이는 유리의 색뿐 아니라 반사되는 빛의 색까지 고민이 필요해요.
또, 유리는 재생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옛유리나 빈티지유리들을 수집해 작업에 활용하기도 하죠. 거의 유일한 단점은 파손의 위험인데요. 유리창 주변에 작품을 걸거나 올려두면 바람이 불면서 창에 부딪히거나 넘어져 깨지는 경우가 생기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주셔야 합니다.
Q. 유리를 다루는 일, 어렵고도 위험한 작업일 것 같아요.
A. 작업을 간단히 설명 드리면, 디자인 된 도안에 맞춰 다이아몬드 날로 만들어진 유리칼을 사용해 유리를 잘라냅니다. 잘라낸 유리조각들은 매끄럽게 갈아내고, 동테이프를 이어 붙여 납땜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기에 섬세하고도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지요. 장갑, 앞치마, 팔토시, 보호안경 등 안전장비가 필수적인데요.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유리 파편에 둘러싸이다 보니 점점 무뎌지더라고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작업해도 파편들에 찔리고 상처가 나고 하거든요. 특히 파편들이 얼굴로 많이 튀어서 보호안경을 써도 이마 같은 곳에 붙어 있기 때문에,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는 되도록 얼굴을 만지지 않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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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얼굴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기고 오래도록 추억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작가님과 함께 스테인드글라스로 남기는 분들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A.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의 얼굴을 담은 작품을 의뢰하시거나, 선물로 의뢰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서 추억하고자 의뢰하는 분들도 많으세요. 반려동물 초상작품을 만들 땐 그림처럼 세심하게는 못하더라도 저마다 지닌 특유의 표정을 최대한으로 담으려 합니다. 작업 전 사진을 요청 드리며, ‘어떤 표정 지을 때 가장 좋으셨어요?’, ‘어떤 표정이 그리우세요?’ 하고 여쭤보죠. 그림과 달리 스테인드글라스 초상작품은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래서 더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저의 꼬임으로 제주에 내려와 사는 친구를 위해 반려견 액자를 만들었어요. 진도믹스인데 낯가림과 경계심이 심해서 타인에게 가까이 가거나 소통하려 하지 않거든요. 이상하게 저를 좋아해서 친구가 육지에 가게 되면 제가 맡아주기도 해요. 이 아이에겐 약간은 겁먹은 듯한, 특유의 근심 가득한 표정이 있거든요. 아이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제일 자주 짓는 표정이라 예쁜 표정 대신 그 특유의 표정을 담아 액자를 만들었어요. 친구도 마음에 들어 해서 엄청 뿌듯했고, 저 역시 진도믹스를 아끼고 애정이 있어서인지 이렇게 액자로 남겨져 다행스럽기도 했죠.
반려동물뿐 아니라 야생동물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 멸종위기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우울증을 겪어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계속해서 들여다보니 상실감 우울을 앓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연구를 거듭하며 어떻게든 기록이나 사진으로 자료를 남기려고 하는데 그 마음도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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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동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과거의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연구원으로 계시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셨다고요?
A. 생명다양성재단은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를 지원하고, 과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환경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설립된 공익 재단법인이에요. 최재천 교수님이 대표로 계시고, 전 재단 창립 때부터 7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시민 대상 강의와 세미나들을 기획하고 진행했습니다. 동물의 행동을 진화학적으로 풀어내는 ‘행동생태학’을 전공했어요.
Q. 와, 동물 연구원이셨군요! 스테인드글라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공부와 일을 해오셨네요?
A. 네. 처음에는 반려동물 쪽으로 공부하면서 다양한 자격증도 취득했는데, 반려동물 산업을 들여다볼수록 실망하게 됐어요. 동물을 상품의 대상으로 보며 그 가치를 따지는, 인간 중심의 서비스와 산업에 회의를 느꼈고 야생동물로 방향을 틀게 됐죠. 석사 과정을 마치고서 해외 봉사단 파견으로 침팬지를 연구하신 제인 구달 박사님이 계셨던 탄자니아에서 2년 반을 머물렀어요. 그 곳에서 제가 좋아하는 동물인 하이에나도 본연의 모습으로 직접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Q. 야생동물 중에서도 왜 하이에나가 궁금하셨어요?
A. 전 하이에나가 안쓰러워요. 이미지 왜곡을 심하게 당한 동물 중 하나거든요. 애니매이션 ‘라이언킹’에서 하이에나는 지저분하고, 우둔하고, 이기적인 동물로 비춰지는데, 많은 분이 만화 속 캐릭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지혜롭다는 표현이 어울리죠. 코끼리처럼 하이에나도 우두머리 암컷을 중심으로 한 가족공동체로 살아나가요. 서로 간의 역할이 있고, 협력도 하고, 가족애도 엄청 깊죠.
Q. 동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지금의 작업에까지 이어지고 계신 거군요.
A. 이제껏 동물들을 대변하고 지켜주고 싶은 입장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면서도 동물을 미적으로 예쁜 소모품으로만 전락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동물의 이야기와 정보를 지혜롭게 담아서 전달하고 싶은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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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랑하는 동물들을 뒤로 하고 어쩌다 제주에 정착하게 되셨나요?
A. 재단에서 일할 땐 대부분 혼자서 프로젝트를 꾸려갔어요.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에 시달리면서 번아웃이 왔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tmi인데, 이직을 준비하며 알아본 회사 중의 하나가 콘돔회사였어요. 콘돔에 동물의 생태학적, 생물학적 정보들, 섹슈얼한 이야기들을 접목하면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예를 들어, 동물들의 생식기는 정말 다양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양이 아니에요. 오리 같은 경우 와인 딸 때 쓰는 코르크 따개의 회오리 모양처럼 생겼거든요. 그래서 코르크 따개를 오리를 접목시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여하튼, 동물들의 생식기가 그렇게 생긴 건 다 이유가 있는 거거든요. 이런 이야기들, 동물들의 성과 생태학적 이야기를 재미있게 콘돔에 담으면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호기롭게 지원했지만 결국 되지 않았어요. 그때 남자친구, 지금의 남편이 제주도에 내려가자고 제안했어요. 남자친구가 먼저 내려왔고, 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워서 뒤이어 내려오게 되었죠.
Q. 제주에서의 삶은 어떠세요? 작업의 영감을 받기에 충분한 환경인가요?
A. 제주에 내려와 처음에 동쪽에서 한달살이를 했는데 다녀보니 서쪽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쪽에 집을 구하면서 동네가 조용하고 위치적으로도 마음에 들고 연세도 저렴한 수산리에 살게 됐어요. 수산리에서도 끝동네, 대부분 제주 토박이분들이 사는 곳이라 누구 한 명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다 알고 하는 조용한 동네에요. 편의점에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할 만큼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인구밀도가 낮고 유동인구도 낮은데 그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서울에서 사람들에 시달리며 살다, 제주에서는 거의 고립되다시피 한 생활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잘 적응해서 만족스럽게 살고 있어요.
이곳에 살면서 가장 좋은 건 밤은 밤답고, 새벽은 새벽답다는 거예요. 밤에는 귀뚜라미 소리, 새벽이나 낮에는 새소리를 듣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확실히 체감하게 되니, 오롯이 하루의 시간을 만끽하게 되죠. 시야에 닿는 곳 마다 자연물이 있으니 작업의 아이디어와 영감도 계속해서 얻게 됩니다. 작업실 창문을 열면 귤밭이 보이고, 동네 산책만 나서도 자연으로 들어가 작은 소동물과 곤충들을 만나게 되죠.
Q. 반려견 짜장이와 함께 살고 계시죠.
A. 짜장이가 6살 때 입양해서 데려왔어요. 반려견 입양은 어린 강아지 위주라 3살만 돼도 나이가 많다고 하니 짜장이는 노견이었죠. 데려오면서도 ‘내가 잘하는 걸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14살이거든요. 벌써 8년을 함께 지냈는데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짜장이를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났어요. 좁은 골목에서 차에 치였는데 뒷다리가 깔렸죠. 교통사고 수술 후 얼굴만 빼고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짜장이를 보는데,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빛에서 살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졌어요.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포기를 해야 하나 잠시 갈등도 했었는데 그 눈빛을 본 순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미안했죠. 짜장이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며 견뎌낼 수 있었어요. 나았다 싶으면 후유증이 생기고, 수술과 입원을 수없이 반복하며 거의 4년 동안 치료를 해나갔죠. ‘내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었을 텐데’하는 죄책감과 더불어 ‘입양되기 힘들었는데 그래도 안락한 곳에서 지내왔으니 괜찮아’하는 마음이 지금도 왔다 갔다 해요. 사람들은 자기연민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잖아요. 그런데 동물은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거든요. 동물들에게 본받아, 그런 바로 같은 짓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짜장이를 키우며 노견 입양에 대해 ‘갈색 어르신’이란 글을 썼었는데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었어요. 반려견을 키우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개들도 나이가 들면 차분해지거든요. 어린 강아지가 무조건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고, 우리가 노견이라 칭하는 개가 오히려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짜장이도 이제 14살이지만, 이 아이가 떠난다고 생각하면 막 견딜 수 없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는 떠나보내야 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까, 보내고 견뎌내는 것이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짜장이의 모습을 잘 남겨두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될 것 같아요. 떠나보냈다고 결코 잊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계속해서 추억하게 된다면 그 모습들을 잘 남겨두고 추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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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기 전과 후 작가님의 삶에 바뀐 것들이 있나요?
A. 재단에서 일할 때는 동물을 대변하고 지키는 데 있어 능동적인 투사로서 활동했다면, 지금은 홀로 작업을 하며 소극적인 투사로서 활동이 좁혀졌다고 할까요. 동물들을 위해 뭔가 조금이라도 하고 있는가,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데요. 한편으로는 홀로 조용히 작업을 하면서 동물과 환경에 대한 생각들에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해요. 또 외부의 영향으로 지치거나 상처받는 일이 사라지고, 나를 잘 돌봐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Q. 그 어떤 제한도 없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A. 하나의 생태계를 담아보고 싶어요. 커다란 나무만 해도 그 뿌리에서부터 줄기, 나무 중간과 윗부분에 사는 동물들이 모두 다르거든요. 신기하게도 동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질서를 지키며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살아가요. ‘다양성 안의 질서’, 자연 속에서는 당연한 풍경을 커다란 작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A. 한림에 짓고 있는 새로운 공방이 내년 봄에 완공되면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려고 해요. 동물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듣고 동물 소품을 만들어보는 원데이클래스나 동물 강연을 열어보고 싶고요. 동물을 지켜나감에 앞서 환경을 지켜야 동물도 자연적으로 지켜질 수 있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으로 나누고 싶어요. 제주의 동식물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 계절에 따른 식물상과 동물상을 작품으로 만들어 작품전을 열고, 전시장의 역할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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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초록취향 구독자들에게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주신다면요?
A. 두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첫 번째는 '동물들의 인간심판'이라는 책이에요. 인간이 벌거벗은 채로 꿈에서 깨어나는데, 동물들이 인간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인간을 소환한 거죠. 동물들의 재판장에서 인간은 비방, 학대, 대량학살, 이 세 가지 죄목에 걸려요. 인간의 죄를 심판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이 유죄라고 발언하는데 단 한 동물, 개가 인간을 변호하고 항변합니다. 마지막 판단과 결론은 책에 나오지 않기에 각자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는데, 우리의 일상과 삶을 되돌아보게 돼요.
두 번째 책은 추천하고 싶지만 함부로 추천하기가 힘든 '고기로 태어나서'라는 책이에요. 이 책을 쓰신 분은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동물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도 아니에요. 돼지농장, 닭농장, 개농장에서 일하며 겪은 자신의 노동을 그 어떤 감정도 배제한 채 담담히 써 내려간 노동에세이에요.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조금 읽다가 하루 쉬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어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몰랐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죠.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마치 강요처럼 느껴질 수 있기에 함부로 추천하지 못하지만, 고기를 먹을지 말지 고민하거나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Q. 당장 제가 읽어봐야겠네요. 머리로는 비건을 이해하지만 실천해나가기 쉽지 않더라고요.
A. 저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비건’이라는 단어는 왜곡되는 부분이 많아 잘 사용하지 않아요. 예전에 ‘오랑우탄과 팜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민들과 우리 주변의 팜유를 파악한 적 있어요. 라면, 과자 등 대부분의 유탕식품과 샴푸, 화장품, 세제 같은 생활용품에까지 팜유가 들어가지 않은 게 없었죠. 팜유, 코코넛오일이라고 하면 식물성기름이니까 비건 식품, 친환경 식품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팜유야말로 비건과 대척점에 있는 식품이에요. 팜유 생산을 위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내 정글을 엄청난 규모로 개간하는데,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로 태워서 그곳의 생태계, 동식물들을 거의 몰살시키거든요. 정글에 살던 오랑우탄들은 불에 타 죽거나 사람들에게 붙잡혀 서커스 동물로 팔리고, 죽임을 당해 식용, 약재로 쓰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삶터를 잃고 강제로 농장에 취직하게 되니 사람들도 피해를 보게 되죠. 이런 불법적인 개간을 통하지 않고 올바른 환경과 공정한 거래 속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팜유는 비건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생산량이 극히 적습니다. 단순히 식물성 식품이라고 비건이다 친환경 제품이다 오해를 만들고 올바른 양질의 정보가 확대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까치들과 오랫동안 생활하며 ‘까치들이 인과관계를 생각하고 행동을 결정하는가?‘ 묻는 '까치 인지 연구'를 했었어요. 사람처럼 까치도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을 하는가가 궁금했죠. 까치를 보면 다 똑같이 생겨서 구별도 안 되지만, 실제로 까치들은 사람처럼 한 마리 한 마리 각자가 타고난 성격이 있어요. 소심하고, 대범하고, 사교적이고, 쾌활하고, 전투적이고 서로 다른 성격이 타고 나고 그 형질이 잘 변하지 않아요. 까치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어서 서열이 높은 까치가 낮은 까치의 것을 뺏고 괴롭히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건 자기 형제를 인식해서 서로를 보호해주기도 하죠. 연구의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까치는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예측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구별을 못 하지만 까치처럼 다른 야생동물들도 고유하게 타고난 성격이 있겠다 싶어요. ‘타고난 대로 살게 해라’ 이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저는 동물들도 타고난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 중심으로 보고, 인간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요.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분들은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셨을 거예요. 반려동물에서 조금 더 테두리를 넓혀서 도시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들에게 마음을 열고 공감해줬으면 좋겠어요. 모든 동물들이 타고난 습성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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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동검도 채플갤러리 - 조광호 신부 : 올해 4월, 섬 속의 섬 동검도에 문을 연 국내 첫 스테인드글라스 갤러리와 작은 명상센터 건물 전체 통창, 강화 바다와 마니산을 배경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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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범어대성당 - 조광호 신부 : 1951년 설립된 주교좌성당으로 2016년 대성당을 증축, 황토벽돌로 지어진 지상 4층 규모. 조광호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220점 감상 가능. 특수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리고 가마에 굽는 건축 아트글라스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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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천성당 - 조광호 신부 : 범선과 돛 형태의 건축물. 45도로 기운 지붕이자 창은 길이 53m, 높이 42m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조광호 신부와 조수 30여명이 1년 반 동안 만들어. 십자가의 이미지를 품은 세 개의 원이 쏟아내는 푸른 빛.
- (광주) 무각사 : 광주 여의산 무각사 내 로터스갤러리. 한국불교미술과 스테인드글라스의 만남, 스테인드글라스로 태어난 고려불화_ 수월관음도, 지장보살도, 아미타팔대보살도 감상.
- (부산 카페) 커피콜121 :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벽면을 장식한 화이트톤의 카페
- (제주 카페) 고토커피바 :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물드는 중후한 바가 인상적인 애월의 커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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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인사이트 - 천사의 시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 신부의 삶과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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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걸어서세계속으로 : 빛의 오케스트라,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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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스쿨 : 세계 최고의 스테인드글라스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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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자인창업센터 : 디자인 창업포럼 온오프라인 생중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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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정몽구재단 : 미래 지식 포럼 기회는 누구의 몫인가 온라인 생중계 (11/10)
- 슬픔의 연결 : 7일간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는 미술치료워크숍 슬픔의 연결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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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 : 지구를 구하는 책읽기 책크인 (~11/11 신청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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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연합 : 플라스틱 업사이클 파티 병뚜껑을 따라오세요 (11/12)
- 제주도 : 세계자연유산 만장굴 미디어아트 (11/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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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나눔 : 제4회 환경학술포럼 (1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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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다양성재단 :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도시인들을 위한 멀리 보는 다이어리 펀딩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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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연합 : 저자와 함께하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 독서 클럽 (11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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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살림 : 토크콘서트 「오늘의 일」 환경을 살리는 일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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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브젝트 성수 : 마키토이, PAPER GARDEN 전시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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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 2022 서울기후행동 활동가 더 깊은 학습 비대면/대면 (11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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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스튜디오 : 멸종위기 동물을 위한 나의 이름은 2023년 달력 펀딩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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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람이X올드독X포인핸드 :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굿즈 펀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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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지평연구소 : 흰목물떼새와 내성천 시민모니터링에 함께 해주세요! 기부
- 기시히 : 청바지를 보내주시면 가방을 만들어 드립니다
- 제주도립미술관 :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11/16~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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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곁에 머물다 간
수없이 많은 사물들을 호명해본다
유년의 저녁
나를 찾아 나선 어머니의 노을빛 음성과
서늘한 바람
말없이 어느 가을, 함께 하늘을 바라봐주던
바닷가의 일몰
꼬박 캄캄한 밤을 나와 지새운 고독까지
시간이 메우는 그 저녁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만 마주하진 못한
서러운 잉여들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곁이 된다는 것은
환희의 반려이지만
누군가의 곁을 지킨다는 것은
슬픔이 내재된 철든 몸짓이다
무턱대고
곁을 후비고 들어오는
관습적인 무례를 범하지만,
대부분은 보헤미안의 피가 흘러
어느 날,
안녕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지
누군가의 곁을 위해
나는 소망한다
바람, 너처럼 자유롭지 않고
바위, 너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없는
도플갱어,
누군가의 서러운 잉여가 되고 싶다.
- 고경숙 '곁' 시집 『혈穴을 짚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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