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디지털 음악을 귀에 꽂아 넣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인을 충전하듯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죠. 반은 깨어 있으면서도 반은 꿈속을 헤매다녔으니, 음악을 듣는다기보단 BGM으로 흘려보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LP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다시 CD에서 MP3로 매체가 발전할수록 음악은 가까이 존재했습니다. 더 자주, 많은 시간 음악을 플레이했지만 제대로 감상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에서 차분히 음악을 감상할만한 마음의 여유와 환경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디지털 세상을 넘어 메타버스까지 다양한 층위를 넘나드는 세상에서는 때로 손에 잡히는 아날로그가 빛을 발하기도 합니다. 느리고 불편한 것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는 이들에게도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은 인간적인 대안이자 해답이 되었죠.

아날로그 시절, 좋아하는 가수의 LP와 카세트테이프는 최고의 보물이었습니다. 비닐포장지를 조심히 뜯어내고 속지와 가사지를 붙들고서 A면부터 B면까지 순서대로 한 곡씩, 책을 정독하듯 음악을 감상했지요. 좋다고 한없이 듣다간 테이프가 다 늘어질까 봐 소장용과 듣기용으로 구분해 구매하기도 하고, 공테이프에 녹음을 해가며 듣기도 했습니다. LP는 더욱더 조심히 다뤄야 했죠. 조금이라도 기스가 날까 먼지 하나 없이 닦아 보관하는게 일이었습니다. 턴테이블 위에 LP를 올리고 바늘을 내리면 소리골을 따라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곡이 끝나면 다른 곡이 나오기 전에 바늘을 다시 올려줘야 했고, A면이 다 돌아 바늘이 헛돌지 않게 B면으로 돌려주는 수고가 있었죠. 그 시절의 음악은 음악 그 자체 뿐 아니라 감상이라는 행위에 수반되었던 추억들을 고스란히 소환해냅니다. 손으로 만져지는 음악, 적극적이고도 풍부하게 음악을 감상하던 경험의 공간과 시간들을 말이죠.

아날로그 감수성을 경험하고 되찾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고도 인간적인 욕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흘러가도 괜찮다는 마음가짐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 한 곡쯤 찬찬히 감상할 수 있는 평안한 나날이길 바랍니다.

A. 안녕하세요. 바이닐펍 20세기소년을 운영하는 초보장사꾼 박상호입니다.

A. 20세기 시절, 소년과 청년기를 보냈기에 제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대부분 20세기 시절에 나온 음악들이에요.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20년 후, 다시금 인생 2막을 준비하려니 ‘직장인으로의 나’ 말고 ‘원래의 나’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20세기 시절 소년과 청년일 때의 순수한 열정을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리고, 동명의 제목을 가진 만화책도 있긴 한데요. 그 만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T-Rex란 록밴드의 20th Century Boy라는 곡이 있어요. 제가 20세기 청년 시절에 가장 좋아하던 밴드이고 노래랍니다. 그래서 20세기소년이란 이름을 정하게 되었어요.

A. 이제 2년 조금 넘었어요. 퇴직 후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 되다보니 뭐라도 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했고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에 더 이상 LP와 오디오를 놔둘 공간이 부족하다보니 공간적 문제도 해결해야 했답니다.

A.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바이닐펍들을 다 가보진 못해서 우리만의 특징, 자랑거리가 있는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네요. 이전에 광고회사를 다니며 세일즈포인트나 마케팅 소구점을 잡는 게 주요업무였기에, 제 점빵을 운영하면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20세기 시절의 저는 그런 것들보단 조금 더 본질적인 걸 추구했던 거 같거든요.

음악을 듣는 펍의 미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면 다양한 라이브러리, 내 취향보다는 고객의 취향이 먼저라는 서비스 정신, 합리적인 가격, 과하지 않지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볼륨과 분위기, 이런 기본적인 것들부터 철저히 지키자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노하우가 많이 생기면 그때서야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들도 나올 것 같네요.

A. 일단 턴테이블과 포노EQ라는 기능을 지닌 앰프와 스피커가 있어야 하기에 디지털 매체에 비하면 공부가 좀 필요한 부분이긴 합니다.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맞게 중고기기를 구하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에요. 어떤 것들을 구해야 할지는 오디오 관련 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으시면 좋겠네요.

Q. ‘20세기 소년’을 운영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었나요?

A. 제일기획이란 광고회사에서 홍보/마케팅 관련 영상업무를 20년간 했습니다.

A. 제주에 이주한지 햇수로 8년차이고요. 늦둥이만 세 명이라 회사에 육아휴직을 내고 제주에 일년살이를 왔다가 그대로 정착하게 되었어요. 예전부터도 제주를 참 좋아했었는데 살면서 경험하게 된 아름다운 자연환경들, 육지에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숲과 바다의 풍광들이 결국 저를 정착하게 만들었죠.

A. 지역의 음악인들이 공연도 하고 다른 이벤트도 펼칠 수 있게, 지금보다는 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코로나 거리두기로 엄두를 못 냈었는데, 슬슬 계획을 세워볼까 합니다.

초록취향 구독자들에게 한마디 말씀 부탁드려요.

A. 좋은 뉴스레터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저 또한 생명과 환경을 소중히 생각하는 구독자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STAN GETZ & JOÃO GILBERTO - Desafinado

CARPENTERS - Close to You

STING - Englishman In New York

📗[Interview] 국내 유일 LP 제작 공장 마장뮤직앤픽처스 하종욱 (이코노미조선) 

“LP는 몹시 까칠하고 오만한 기록 매체다. 관리도 어렵고 쉽게 손상된다. 하지만 CD, MP3, 스트리밍이 담지 못하는 자연스러운 음색, 윤기, 밀도가 있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는 음질이 ‘다르다’라는 기준에서 시작된다. 카트리지 바늘이 LP의 소릿골에 닿아 자아내는 백그라운드 노이즈까지 LP는 풍부하고 섬세한 소리를 담고 있다. 디지털이 포착하지 못하는 밀도와 자연스러움이 있는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느낄 수 없는 ‘접촉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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